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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아침에] 과거완료형 행복

이곳은 어머니날, 아버지날이 따로인데 한국은 ‘어버이날’이라고 떠들썩합니다. 미뤄두었던 효도를 한 방에 해 치우려는 듯 줄줄이 돈이 달려 나오는 머니 케이크에, 미슐랭 식당 외식에, 자손들과 부모들은 경쟁하듯 SNS에 사진을 찍어 올리며 자랑합니다.   20여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2021년에 어머니가 소천하셔서 이젠 어머니날도 아버지날도 다 부질없는 노릇이 되었습니다. 엄마는 한국의 어버이날은 빠르고 이곳의 어머니날은 느려서 그 시차를 못 기다리시고 늘 전화로 “어머니날 송금했냐?”며 조급한 확인을 하시곤 했었죠.   남편 보기에 부끄럽던 그 물질 추구의 품위 없던 채근이 어머니가 안 계시니 오히려 그립기도 합니다. 넉넉히 보내드릴 걸 무슨 계산을 그리했는지 후회스럽습니다.   친정아버지가 뒷마당에 심어 두고 가신 귤나무엔 해마다 귤이 열리는데 아버지께는 보여드릴 수도 없고, 너희 가족을 위해 늘 기도하신다던 어머니는 지금도 하늘에서 기도하고 계시겠죠.   시인 이기도 한 정재찬 교수님의 ‘누군가의 자녀이면서 어린 자녀를 둔 부모일 때, 그 힘든 시기가 인생의 가장 복된 시간이다. 부모님은 가시고 자식은 떠난다’ 라는 글을 읽고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그 글을 읽고 나서 생각하니 정말 그랬네요. 그 행복했던 시간은 나도 모르게 흘러가 부모님은 가시고 자식은 가정을 이루고 떠났습니다.     과거완료형 행복이랄까요? 살아계실 때 잘하라는 말이 올해는 유난히 사무칩니다. 사후약방문처럼 허무한 ‘효도’라는 말에 새삼 부끄러워집니다. 부모님과 멀리 떨어져 사는 것으로 이미 ‘불효’가 진행 중인 딸이었으니까요.   미국의 어머니날은 20세기 초 필라델피아의 애나 자비스라는 여성의 노력으로 국가적 기념일이 됐다고 하는데, 가사 노동과 경제활동도 함께 해야 하는 어머니들을 위한 날입니다. 미국에서는 1914년부터 5월 둘째 주일을 어머니날로 지킵니다.   어머니날을 상징하는 카네이션은 순수함을 나타내는 꽃으로, 빨강 카네이션과 분홍 카네이션은 어머니의 사랑을 의미한다고 합니다. 흰색 카네이션은 추모와 함께 내 사랑은 살아있어요 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고 하네요. 엄마가 안 계신 2022년부터는 교회에서 중등부 학생들이 마련한 흰 코르사주를 달며 엄마 생각을 했습니다.   유대인의 속담 중에 ‘신은 모든 곳에 존재할 수 없기에 대신 어머니를 만들었다.(God could not be everywhere and therefore he made mothers)’라는 것이 있습니다.     나는 신을 대행할만한 엄마인가? 곰곰 생각해 보는 어머니 주일입니다. 이정아 / 수필가이 아침에 과거완료형 행복 어머니날 아버지날 과거완료형 행복 흰색 카네이션

2024-05-12

[이 아침에] 생일파티

부모님 살아계실 때는 모든 가족행사가 두 분을 중심으로 돌아갔다. 설을 시작으로 어머니날, 아버지날, 부모님 생신, 추수감사절, 그리고 크리스마스로 한 해가 끝이 났다.     7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그해 가을에 어머니마저 돌아가시고 나니, 가족행사의 구심점이 사라졌다. 처음에는 부모님 제사를 모셔 가족이 모였는데, 3년 상을 끝으로 성당의 연미사로 대신하게 되니 형제들이 모일 핑곗거리가 사라졌다. 그래서 생각해 낸 것이 생일에 모이자는 것이었다. 생일을 맞는 사람이 자기가 원하는 날 가고 싶은 식당으로 가족을 초대하는 방식이다.     생일이 흩어져 있어 한 달에 두 번 모이는 일도 없고, 어린 날의 추억을 함께 나눈 동시대 또래들의 모임인지라 제법 재미있게 잘 돌아갔다. 그러다 갑자기 맞게 된 코로나 펜데믹. 2년 넘게 모이지 못했다. 코로나 사태가 진정이 되고, 경제활동이 재개되었지만 우리들의 생일 파티는 쉽게 다시 시작되지 않았다. 무슨 일이든 시작하기는 힘들고 끝내기는 쉬운 모양이다. 중단한 일을 다시 시작하려면 계기가 필요하다.     누님은 동부에 사니 이곳에서는 5남매 중 둘째인 내가 가장 손 위가 된다. 내가 칼을 빼 들어야 할 것 같아 생일이 다가오자 초대의 메시지를 보냈다. 장소는 부모님 살아생전부터 자주 갔던 타운의 중식당 Y.     4남매와 우리 아이들, 손자 손녀 모두 모였다. 식사를 기다리며 선물은 이미 다 풀어 보았고, 손녀딸과 케이크의 촛불도 끄고 나니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는 이렇게 가족이 모이면 이때쯤 꼭 한마디 말씀을 하시곤 했다. 자식을 사랑하고 걱정하는 마음에서 하는 이야기지만, 아버지의 말씀은 대개는 한두 명의 심기를 건드려 어색한 자리가 되곤 했다.     나이가 들며 말이 많아지는 것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다 같은 모양이다. 이런 현상을 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한다. 노인이 말이 많은 이유는 살면서 배우고 익힌 것을 후손들에게 가르쳐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고 발전하기를 기대하는 본능적 행위라는 것이다. 무엇이 먹으면 죽는 독버섯인지, 어떤 약초를 먹거나 바르면 병이 낫고 상처가 아무는지 등의 지혜를 가르쳐 주고 싶은 것이다.  이제 이런 지식은 스마트폰이나 노트북으로  쉽게 찾을 수 있지만, 우리의 DNA에 각인된 본능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인생이란 누가 가르친다고 쉽게 배울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스스로 살며 겪어 보아야 깨닫게 된다. ‘나이가 들수록 입은 닫고 지갑을 열어라’는 유대인 속담대로 나는 입을 굳게 닫았다. 다음에도 열지 않을 작정이다. 곁에서 지켜보며 응원만 해줄 생각이다. 그리고 그날 지갑은 아내가 열었다.     저녁을 먹은 Y 식당은 우리 가족에게는 특별한 장소다. 부모님의 환갑잔치, 결혼기념일, 두 분의 칠순 등 큼지막한 가족행사는 모두 이곳에서 했다. 음식 맛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이 앉았던 상을 보니 빈 접시만 남았다. 나이가 들면 입맛도 까다로워지는 모양이다.   이 식당도 재개발로 곧 문을 닫을 것이라고 한다. 세상에 영원한 것은 없다. 이렇게 식당도 우리 집도 세대교체를 맞고 있다. 고동운 / 전 가주공무원이 아침에 생일파티 어머니날 아버지날 생일 파티 부모님 제사

2022-10-12

[문화 산책] 파더스데이 유감

지난 19일은 ‘아버지의 날(파더스데이)’이다.   아버지날이라? 이런 생뚱맞은 날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처량하게 쪼그라드는 아버지의 신세를 위로하자는 날인가. 어머니날만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미안해서 아버지날도 만들어주자는 갸륵한 생각인가. 그래서 적어도 이날 하루만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접하겠다는 뜻인가.   하긴 미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날, 장인·장모의 날 등 무슨 날이 많기는 하다. 이렇게 많은 무슨 날들이 혹시 업자들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든다. 제대로라면 1년 365일 모두가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이어야 맞는 거 아닐까.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아버지의 신세는 어지간히 처량하다. 죽어라 일해서 돈 벌고도, 아내에게 홀대 받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가 좋은 증거다. 그런 구호가 등장하는 세상은 이미 망가진 세상이다. 아비 신세를 비아냥거리는 유머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외롭고 처량한 아버지들… 중년의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다. 자식들은 저 혼자 다 큰 것처럼 제멋대로고 걸핏하면 유창한 본토 영어로 총알처럼 말 대답해대고, 아내는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따따부따 잔소리 쏴대고,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은 떨어지고, 사회에서는 변두리로 밀려나고, 집안에서는 편안하게 엉덩이 붙일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렇다고 사랑이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문제다.   그러니 풀밭에 나가 쇠몽둥이 휘두르고,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노래나 흥얼거리고…. 화를 풀기 위해 죄 없는 공을 마구 후려치니 제대로 맞을 리도 없다. 골프공도 자존심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난폭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곱게 맞을 까닭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들이 골프에 미치는 이유가 외로움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 특유의 가부장주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외로운 건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사랑 표현에 대단히 서툰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거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우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표현 안 하면 모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아버지와 자식들이 자상하게 정을 나누지 못하고 데면데면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며 ‘걸걸타령’을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다. 더 잘해 드릴 걸, 사랑한다고 말할 걸, 이랬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사랑해요!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도 있다.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 중의 한 구절이다. 생각해보면 처절한 이야기다.   오래전 한국에서는 ‘울고 싶은 남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들아.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싶다. 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힘겨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말에다 “사랑이 있어야 아버지가 바로 선다”는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상으로 궁상맞은 글 끝! (아, 오해 마시기를 나는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행복한 아버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파더스 유감 어머니날 아버지날 할아버지 할머니날 사실 아버지

2022-06-22

[문화 산책] 파더스데이 유감

미국에서는 6월 세번째 일요일이 ‘아버지의 날(파더스데이)’이다.   아버지날이라? 이런 생뚱맞은 날이 왜 필요한지 잘 모르겠다. 날이 갈수록 처량하게 쪼그라드는 아버지의 신세를 위로하자는 날인가. 어머니날만 요란스럽게 떠드는 것이 미안해서 아버지날도 만들어주자는 갸륵한 생각인가. 그래서 적어도 이날 하루만은 아버지의 존재를 인정하고 대접하겠다는 뜻인가.   하긴 미국에는 할아버지 할머니날, 장인·장모의 날 등 무슨 날이 많기는 하다. 이렇게 많은 무슨 날들이 혹시 업자들의 농간으로 만들어진 건 아닌가 하는 심술궂은 생각도 든다. 제대로라면 1년 365일 모두가 어머니날, 아버지날, 어린이날, 부부의 날이어야 맞는 거 아닐까. 그렇게 살아야 할 것 같다.   사실 아버지의 신세는 어지간히 처량하다. 죽어라 일해서 돈 벌고도, 아내에게 홀대 받고, 자식들에게 따돌림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구호가 좋은 증거다. 그런 구호가 등장하는 세상은 이미 망가진 세상이다. 아비 신세를 비아냥거리는 유머는 또 얼마나 많은가. 외롭고 처량한 아버지들… 중년의 아버지일수록 더 심하다. 자식들은 저 혼자 다 큰 것처럼 제멋대로고 걸핏하면 유창한 본토 영어로 총알처럼 말 대답해대고, 아내는 측은한 눈길로 내려다보며 따따부따 잔소리 쏴대고,   어디 그뿐인가, 하루가 다르게 기운은 떨어지고, 사회에서는 변두리로 밀려나고, 집안에서는 편안하게 엉덩이 붙일 자리가 점점 줄어들고… 그렇다고 사랑이라도 있냐 하면 그것도 아니니 문제다.   그러니 풀밭에 나가 쇠몽둥이 휘두르고, 술에 취해 혀 꼬부라진 소리로 원더풀 원더풀 ‘아빠의 청춘’ 노래나 흥얼거리고…. 화를 풀기 위해 죄 없는 공을 마구 후려치니 제대로 맞을 리도 없다. 골프공도 자존심이 있지, 그런 마음으로 난폭하게 휘두르는 몽둥이에 곱게 맞을 까닭이 없다. 나는 한국 남자들이 골프에 미치는 이유가 외로움과 관계가 깊다고 생각한다.   심리학자들의 진단에 따르면 한국 특유의 가부장주의 가정에서 아버지가 외로운 건 소통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감정이나 사랑 표현에 대단히 서툰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그런 거야 드러내 놓고 말하지 않아도 다 아는 거 아니냐고 우기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표현 안 하면 모를 미묘한 감정의 흐름이 너무도 많은 것이 우리네 인생살이 아닌가.   아버지와 자식들이 자상하게 정을 나누지 못하고 데면데면 살다가, 돌아가신 뒤에야 뒤늦게 후회하며 ‘걸걸타령’을 늘어놓는 것이 고작이다. 더 잘해 드릴 걸, 사랑한다고 말할 걸, 이랬으면 좋았을 걸… 아버지 미안해요, 용서하세요, 사랑해요!   “아버지가 마시는 술의 절반은 눈물”이라는 유명한 시 구절도 있다. 김현승 시인이 쓴 ‘아버지의 마음’ 중의 한 구절이다. 생각해보면 처절한 이야기다.   오래전 한국에서는 ‘울고 싶은 남자들’이라는 책이 나왔는데 그 책에 이런 글이 실려 있다. “아들아. 나는 너 때문에 울고 싶다. 남자로 산다는 것… 참 힘겨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이 아닌 힘겨운 길을 함께 걸어가는 동지로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   아버지가 바로 서야 가정이 산다는 말에다 “사랑이 있어야 아버지가 바로 선다”는 한마디 덧붙이고 싶다.   이상으로 궁상맞은 글 끝! (아, 오해 마시기를 나는 아이들로부터 존경받는 행복한 아버지다.) 장소현 / 시인·극작가문화 산책 파더스 유감 어머니날 아버지날 할아버지 할머니날 사실 아버지

2022-0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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